공부의 때는 따로 있다?

공부하는 건지 이야기를 듣는 건지, 아이들이 모여서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놀란 표정을 짓는 아이, 집중하는 아이, 웃는 아이. 아이들 눈빛은 다들 초롱초롱.

"아이의 지식 습득 방식을 활용하면 성인도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글을 본 뒤, 골자를 정리하고 내 생각을 추가한 비망록을 작성했다.

 

성인의 생각(사고) 흐름

1.응, 이건 뭐지?궁금증이 생기고, 관찰하기 시작
2.내가 아는 **이랑 같은가?비슷한 것들을 떠올리기
3.어떻게 쓰는 거야? 이케?유사한 것을 다루듯 사용해보기
4.아, **처럼 사용하면 되네~쓰임과 성질이 같은 부류로 규정
처음 보는 유형물을 접했을 때

1.응???집중
2.아는 내용인가?나름의 객관적(사전적) 접근
3.이걸? 이렇게 한다?지식이나 개념의 쓰임을 추리-증명
4.음, 그렇군.비슷한 개념끼리 카테고리로 정리-판단
무형의 지식과 개념도 위 사고 과정과 유사

여기선 원문 글쓴이와 내가 생각하기에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고 과정의 정의이다.
시작부터 판단하고 싸우자 달려드는 사람도 있고, 내가 알던 것과 다르면 곧바로 등 돌리는 사람, 사고 모든 과정을 감수성에 의존하는 사람, 천차만별이란 건 분명하다.



아이의 지식 습득 방식

어린아이는 위의 두 번째 사고 과정부터 익숙하지 않다.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
이때는 세상 모든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모든 것이 충격이다.
"와, 이건 또 뭐야!" 눈이 똥그래진다. 뭔가 보이면 손이 먼저 나간다. 입에 가져가서 맛을 보고 깨물어 본다. 흔들어 보고, 소리도 들어보고, 던져도 본다.
경험하고, 같은 경험을 반복하면서 알아가는 재미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다른 이의 개념이나 생각의 개입 없이 자신의 경험 그대로를 습득하고 이해하는 시기이다.
맛있는 건 먹어도 되고, 딸랑딸랑하는 것은 날 즐겁게 하고, 김 나는 걸 만지면 뜨겁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아프다는 것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이런 순수 경험을 기반한 아이 스스로 교육하는 과정은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지식의 확장과 인격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안 된다'는 개념이 부족하니까, 자연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데 브레이크가 없다. 이 시기에 빠르게 독창성을 확장해나가는데, 가끔 성장 속도가 말이 안 되게 폭발적인 아이들을 목격하곤 한다. 일찍이 일반적인 기준과 상식을 넘어서는 독보적 영재들이 이에 속한다.

음악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3세에 피아노를 쳤고, 5세에는 작곡, 12세에는 오페라를 작곡했다고. 무서운 지식 습득력이다. 어린 모차르트가 한 손은 피아노 건반 위에 올리고 다를 꼬고 앉아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초상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여기선 편향된 경험을 의도적으로 제공하고 집중시켜서 특정 분야에서 일찍이 천재성을 깨우는 영재 교육이 이상적인 유아교육법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다양한 시행착오의 경험을 하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되면, 일찍 포텐이 터졌으나 멘탈 또한 터져서 천재성이 빛을 잃는 경우도 볼 수 있고…)


아이의 지식 습득 방식이 어른의 그것보다 낫다?

모든 걸 경험을 통해 사고하고 배우는 과정은 오래 걸린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세긴 지식과 생각이라서 혹 잘못 습관을 들였거나 왜곡되었더라도 굳어져서 변화를 주기가 상당히 어렵다. 미각과 같은 감각은 어릴 때 확정돼 더는 개선되지 않는 불변의 영역으로 보일 정도고. 트라우마의 경우도 극복하기 힘든 점으로 작용하는 예가 되겠다.
'효율'만 따지자면 성인은 성인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게 좋게 보인다. 다만, 머리로 배운 건 몸으로 배운 것보다 쉽게 잊힌다.



효율적인 지식 습득 과정

1.이건 뭐지?
2.내가 알던 건가?
3.이건 좀 새롭다?/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르다? 더 볼까. (o)
내가 알던 것과 다르다? 틀렸네~/ 더 볼 필요 없어. (x)
4.이걸 이렇게도 쓸 수 있단 거야?
5.**이랑 비슷하네/ 오, 새로워!/ 이건 대체 뭐가 문제야?!

섣불리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의구심은 순수한 물음으로 남겨놓은 채 더 깊이 파고드는 자세는 교육의 효율과 수준 자체를 높인다.
5번 단계에서는 나름의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텐데, 추리와 증명을 거친 판단이기 때문에 왜 맞나/틀렸나에 대한 사고의 연장도 가능해진다. 3번 단계에서 이른 판단을 내리는 것과는 큰 차이.

배우기(학습)에 앞서 교재를 한번 다 읽어본다,
토론할 때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한다,
게시글을 다 읽기 전에 댓글 달지 않는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으면 그 무언가를 지르고(사고) 본다,
어디를 배우고 싶으면 거기로 견학을 하러 간다,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증거를 살피고 결과를 지켜본다,

모두 실질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안다'는 게 폭력이 될 수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간 경험하고 배워 알게 된 '축적된 자기 수준'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데 익숙해지고, 이 사고의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 (생각이 짧아진다)
그런데, 자기 안에서 간단하게 답을 내리는 데 익숙해져 버리면 자기가 알던 것을 벗어난 것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나 사고를 굳이 하려 들지 않게 된다. 모든 성인이 그렇진 않을 것이고 저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어릴 때에 비해 어떠한 것에 흥미를 느끼거나 도전하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그렇게 점차 자기 발전 속도가 줄어들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넌 다 틀렸고, 난 다 옳다"는 독선에 빠지는데, 이쯤 되면 더디기라도 하던 자기 발전은 완전히 멈춘다.

자기 발전만 멈춘다면야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생각이 멈추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막힌다. 요즘은 꼰대 취급당하기 일쑤인데, 자기 발전을 멈춘 시점까지의 얘기밖에 할 게 없으니까 "라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불통이 된 사람들을 살펴보면 배우고자 하는 본능은 죽어 있고 지키려는 본능이 강하다는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집착이란 게 사람이 반드시 고집해야만 할 때를 알게 하는 것이라서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을 추하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추해지지 않으려면 항상 자신을 진단하고 경계해야겠다.
'혹시 나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물음을 던지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 답을 듣기 위해서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버리진 않았나?'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은 오래 유지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걸 자주 느끼곤 한다.
시간이 지나고 더 배워갈수록 이전에 알던 것 중에선 틀린 것도 있단 걸 발견하기도 하고, 지적당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쪽팔림은 잠시다, 늘 새롭게 고쳐나가려는 자세를 취하면 된다고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틀렸다'는 것에 대한 공포심인지 움츠러들고 방어하는 기질이 거의 본능적으로 나온다.
새로운 것 앞에서 무엇인가 배우려 하기보다, 판단하고 부정당하지 않는 것에만 온 에너지를 소모려 든다. 두려울수록 더 행악질하고 상처를 주는 짐승처럼. (나부터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다)
만일 '내가 아는 것'이 나와 타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식으로 쓰이지 못하고 서로를 괴롭히는 데만 쓰인다면, 그것은 폭력의 도구일 뿐이라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겠다. 늦기 전에.


우리 모두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인에서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내 한계로 여기던 것을 뛰어넘고 내 굳어진 것을 깨어버릴 것을 강요당하게 된다.
꼭꼭 숨겨두고 싶던 트라우마나 흑역사가 드러나고, 새롭게 열린 가능성 앞에서 완고하던 입장은 흔들리고, 내가 알았던 것이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틀렸다는 지적도 당한다.
고통스럽고, 내키지 않고, 쪽팔린 성장통이 뒤따른다. (우리는 평생을 철들어가는 존재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확고한 것 없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우유부단한 자세가 옳다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도 부정할 순 없겠다.
그 고집은 저마다의 개성이 될 수도 있고, 생존이나 인간 존엄과 밀접한 것일 수도 있고, 신앙관, 정치관, 이상 세계관 등등 다양할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을 남이 아닌 존귀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선택한 각자의 다름에 대해서는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주고, 정 존중 못 하겠다면 외면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미 우린 '다름'을 '틀림'으로 자기 식대로 오해하고 정의하고, 나의 옳음만을 강요해서 생긴 많은 분쟁을 봐왔다.
내가 맞고 네가 틀렸을 수도 있고, 내가 틀리고 네가 맞을 수가 있고, 너도 맞고 나도 맞을 수도 있고, 다 틀렸을 수도 있다.
그저 우리 모두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겸허히 책임을 지며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맺음글

어린아이 일 때가 가장 흡수력이 빠른 시기이고, 이후 그때의 속도를 따라가기란 불가능하다.
한 해라도 어릴 때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 아이 스스로 배움의 폭을 확장하도록 조력하는 게 주요하겠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노년에도 지식 습득하기를 놓치지 않는 분들. 남자 모델을 김칠두 할아버지, 망원렌즈를 단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계신 한 할머니

습득의 속도에 있어선 절대적으로 불리하겠지만, 배움과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가는 건 속도와 별개의 문제이다. 속도만큼 방향도 중하다.
평생 아이처럼 순수하게 배우려 자신을 경계하고 노력을 들인다면 배움의 깊이는 깊어질 것이고 소통에서도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유와 관용, 그리고 식지 않는 학구열은 평생교육 시대에 필요한 덕목 같다.


아이와 어른의 지식 습득 과정을 예로 들었고, 배우고 사고하기를 멈췄을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해 적어봤는데, 글이 좀 길어졌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냉소적인 태도에서 돌아서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단 한 가지를 부탁합니다. 특히 지금 시청하고 계신 젊은이들에게 간청합니다. 제발, 시니컬하지 마세요. 저는 냉소를 증오합니다.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어떤 사람도 자기가 얻을 거로 생각하는 걸 전부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정말로 열심히 일하고 친절하다면, 반드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단언컨대,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겁니다.

- 코난 오브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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